
‘전업주부도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혼 상담을 진행할 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인데요.
가정을 지키느라 경력이 단절된 사람, 아이와 집을 돌보느라 자신을 뒤로 미룬 사람. 하루 24시간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분할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죠.
이혼 후 소중한 자녀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니까요. 오늘 이야기를 들려주실 하영 씨도 이 고민을 하던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Q. 처음 이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딱 언제라고 말하긴 어려워요.
‘조금만 더 참아보자,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진 버티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아이들도 성인이 되었고, 더는 이렇게 못 살겠더라고요.
아이를 낳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온종일을 집에서만 보냈어요. 옛날엔 안 그랬던 것 같았는데 남편은 말수가 점점 줄고, 집안일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더라고요. 아이들을 돌보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뭐, 그런 것들은 모두 제 몫이었어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해왔어요.
그런 걸 요즘 독박육아, 독박살림이라고 하잖아요? 그땐 그런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딱 그거였어요. 아무리 아파도, 쉬고 싶어도,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은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남편은 여전히 밖에서 잘 지내는데, 나는 집 안에만 갇혀 있는 사람 같았거든요. 그렇게, 이혼을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더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이 집에 남아 있어야 하나 싶어져서요.
Q. 결혼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땐 하루가 너무 길었어요.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남편 도시락부터 싸고, 아이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다시 남편이 퇴근하면 또 저녁 차리고, 아이들 재우고, 설거지하고..
그런데도 남편은 한 번도 듣기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없어요. 오히려 ‘넌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 그 말,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리고 시댁 일도 늘 제 몫이었어요. 명절 때마다 며칠 전부터 장 보고, 반찬 만들고, 제사 준비까지 다 했죠.
하지만, 아무도 저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안 해주더라고요, 저는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남의 집 제사에 노력했던 건지..
처음엔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제가 남들보다 일찍 결혼 했다 보니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시어머니가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요즘 여자들은 살기 편하다고, 나 때는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랐다고요. 그 말이 서운했지만, 한 편으로는 다들 그런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20년쯤 지나니까, 너무 외롭더라고요. 남편은 대화도 없고, 눈을 마주쳐도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았어요. 무언가 말하려고 하면 “됐어, 네가 뭘 알아”라며 말을 끊거나,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리곤 했으니까요.
그리고, 시댁 식구들은 물론이고 아이들 앞에서조차 저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곤 했어요. 하루는, 딸아이가 제 방으로 와서 괜찮냐고 묻더라고요. 남편에게 그런 모진 말을 들을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났는데, 딸이 묻는 그 한마디에 왜 눈물이 왈칵 나던지.. 딸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고 차라리 이혼하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하나도 안 괜찮았나 봐요. 그동안 너무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가 너무 안쓰러워졌어요.
Q. 이혼을 결심한 뒤, 걱정되는 것이 있었나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였어요.
예전에는 이혼하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는데요. 이제 아이들도 성인이 돼서 저의 선택을 응원해 준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현실적인 두려움이 확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임신 후 회사를 그만두고 20년 넘게 집안일만 했어요. 그동안은 남편의 월급으로 살아왔고요. 그러니까, 이혼하면 당장 생계부터 막막했죠. 이 나이에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을까.. 그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어요. 그게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게다가 재산은 모두 남편 명의로 되어 있어서, 이혼하면 돈 한 푼 없이 몸만 나가야 할 것 같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모르는 남편의 비상금이나 숨겨둔 재산이 있을까 봐... 저는 전혀 알 길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되니까 너무 억울했어요. 아이들을 키우는 데 쓴 시간은 아깝지 않아요, 오히려 그건 제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하루도 쉬지 않고 가정을 위해 살아왔는데 밖에서 돈을 벌어왔다는 이유 하나로 남편만 가진 게 있고 나는 빈손이 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래서 이혼소송을 결심했다고요?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했을 때, 처음엔 ‘그래, 마음대로 해라’하더니 이내 말을 덧붙이더라고요. “이혼할 거면 몸만 나가. 재산이고 집이고 너한텐 한 푼도 못 주니까.”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20년을 넘게 한 집에서 같이 살아왔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저 본인 집에 얹혀살며 일해주는 식모였던 걸까요. 아이를 키우고, 집을 지키고, 남편이 일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나인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전업주부는 재산분할을 조금도 받을 수 없는 건지, 하루 종일 검색해 보다가 ‘이혼공감솔루션 다시’를 알게 됐어요.
유튜브 영상이었는데 전업주부도 충분히 기여도를 인정받으면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남편 명의로 되어 있거나 숨겨진 재산도 법원을 통해 모두 조회할 수 있다고요.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이혼 소송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사실, 처음엔 조용히 끝내고 싶었어요. 그동안 미우나 고우나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잘 정리해서 끝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저렇게 너무 뻔뻔하게 나오는 걸 보니까, 이제는 나도 살길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됐어요.
Q. 소송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전화로 상담 예약을 하고 다음 날 직접 찾아갔어요. 살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던 터라, 괜히 긴장돼서 전날엔 잠도 설쳤던 것 같아요.
근데 막상 가보니 생각했던 법무법인 이미지와 달리 훨씬 따뜻하고 화사한 공간이더라고요. 변호사님도 친절하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시고, 제 이야기도 잘 들어주셔서 긴장이 조금 풀렸어요. 제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님이 그러셨어요. 가정을 위해 희생한 누군가의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요.
"20년의 세월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하영 님의 헌신은 법적으로 '가사노동'이라는 명백한 기여입니다. 그걸 숫자로 증명하는 게 저희 일이에요. 꼭 찾아드릴게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어요. 다들 제 노력을 당연하게만 여겼지, 그동안 아무도 제 노력을 인정해 준 적이 없었거든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후에는 정말 빠르게 진행됐어요. 남편도 변호사를 선임하더니, 혼인 기간 동안 본인만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책임져 왔고, 저는 전업주부니까 재산분할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생활비만 무리하게 요구하며 정작 가정에는 소홀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변호사님은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이게 그냥 제출만 하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 첫째로, '재산 은닉'을 막아주셨어요.
남편이 재산을 숨겼을 가능성에 대비해, '다시'라는 법원에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과 '과세정보 제출명령'을 신청해서 남편 이름으로 된 모든 은행, 증권사, 보험사 계좌는 물론이고 부동산 내역까지 전부 조회했어요. 그 과정에서 남편이 이혼을 결심한 시점부터 몰래 시어머니 명의로 돌려놓으려던 주식 계좌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 둘째로, '거짓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무리하게 요구했다'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다시'라는 20년 치 생활비 통장 내역을 전부 분석해서 90% 이상이 아이들 학원비, 식비, 병원비, 공과금으로만 쓰였다는 걸 도표와 그래프로 만들어 반박 자료를 냈어요. 제가 사치를 부린 게 아니라, 가정을 위해 알뜰하게 사용했다는 걸 숫자로 증명해 주신 거죠.
마지막으로, 성인이 된 아이들도 '엄마는 저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셨고, 아빠의 폭언에 고통받으셨다'라는 사실확인서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결국 법원에서도 제 기여도를 50%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남편의 오랜 정서적 학대를 인정받아 위자료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동안 숨죽여 지내온 세월이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이혼 후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이혼이 끝나고 나서야,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은 집과 시장, 그리고 시댁. 제 세상이 그게 전부였거든요.
이제는 아침에 눈을 떠도 누가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뭘 먹을지, 어디로 갈지를 내가 정할 수 있어요. 그게 이렇게 자유로운 일인지, 예전엔 몰랐어요.
얼마 전에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도전해 봤어요. 살면서 그런 걸 나가볼 줄은 몰랐는데, 그냥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금방 지치고 숨이 턱 막혔지만,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니까 오히려 웃음이 나왔어요. “그래, 나 여기까지 결국 왔네.” 이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상황이 왜 그렇게 벅차던지.
요즘은 여성취업지원센터에서 하는 교육도 듣고 있어요. 컴퓨터 배우고, 자격증 준비하고. 처음엔 두려웠는데, 이제는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새로운 걸 알아간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싶어요.
이제야 조금씩 나를 되찾는 기분이에요. 이혼이 끝이 아니라, 제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거구나 싶어요. 이제는 누가 대신 나를 증명해 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믿으면 되니까요.